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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집시 - 루소

 

루소는 마흔 아홉살이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늦깍이 화가였습니다.

파리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정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못했죠.

그래서 생계를 위해 세관원으로 일을 하면서 일요일 마다 그림을 그려 일요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일요화가는 아마추어 화가를 말합니다.

직업은 따로 있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죠.

주중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그림을 그리기에는 아무래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주말인 일요일에 그림을 그려서 이런 별명이 붙게 된거죠.

 

루소는 일요화가로 출발해 나중에는 일주일 내내 그림을 그리는 진짜 화가가 됩니다.

타히티 섬의 화가로 유명한 고갱도 처음에는 일요화가 였다고 합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도 주말이면 그림에 몰두하는 일요화가였구요.

집시 여인이 사막 한가운데 누워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발치에는 발자국이 보이지 않아요.

마치 집시 여인이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초원에 있어야할 사자가 사막에 있습니다.

 

이 모든것들이 어울려 마치 꿈속의 모습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가 처음 작품을 발표했을 때 , 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에 나타난 어색한 비례와 비현실적인 내용등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그림세계는 곧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많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시적이면서도 참신한 색감, 독특한 상상력등은 피카소와 아폴리네르 등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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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나의 목욕 - 부셰

 

사냥을 마친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와 그녀를 따르는 님프 칼립스토가 목욕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순결을 상징하는 다이아나 여신이 방금 목욕을 마친 나체의 모습으로 청순하고 성숙한 모습을 뽐내고 있죠.

 

이 그림의 에로틱함에 반한 루이 15세가 구입했다고 전해집니다.

부셰의 작품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부셰는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입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은 방탕한 귀족들에 아부하기 위해 음란하고 퇴폐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며 부셰를 비난합니다.

그 이유는 부셰가 타고난 재능이나 작품이 뛰어났다기 보다는 시대의 유행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걸로 사랑받은 화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귀족들은 도덕과 교훈적인 성서를 주제로 한 내용보다는 그리스 로마신화속의 연애담을 더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부셰는 이런 귀족의 사치스러운 취미에 맞춘 화려한 작품들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던 거죠.

 

당시 루이 15세가 연인이자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이 그의 그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비싼 값에 그림을 팔고 그 돈으로 사치를 누리던 그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성난 민중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말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그림들을 그리게 되면서 작품의 질이 떨어져 명성을 잃는 비참함을 격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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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생트 - 드가

 

압생트는 술의 이름입니다.

앞생트를 앞에 둔 여인의 생기없는 표정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인물의 모습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테이블의 다리를 과감하게 생략한 것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은 근대화로 많은 이들이 낙오자가 되어 술에 빠져 살았습니다.

드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근대화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압생트는 1850년 무렵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술입니다.

당시 파리에서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독한 술이기도 했지요.

값이 싸고 빨리 취하는 이 술의 매력에 빠진 예술가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등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 술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압생트는 별명도 굉장히 많습니다.

독특한 녹색 병 때문에 녹색요정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에메랄드 지옥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오후의 죽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하죠.

 

마시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술병 입구에 구멍이 뚫린 숟가락을 올려 놓고 그위에 각설탕하나를 얹은 뒤 그위에 차가운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설탕에 술에 스며들게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술은 너무 독하고 위험한 성분들이 들어 있어서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것도, 자살을 한 것도 바로 이 압생트에 취해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에드가 드가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데생화가 중 한명입니다.

그는 회화와 드로잉, 조각뿐만 아니라 사진술에도 정통했습니다.

에드가 드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모는 드가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차려 집안에 작업실을 두는 것을 허락하고 그의 재능을 살려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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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 밀레 

농촌 풍경을 즐겨 그렸던 밀레는 종종 파리의 다른 화가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죠.

 

"나는 농부로 태어났고, 영원히 농부로 남을 겁니다. 왜 감자를 키우는 일이 고귀하지 않다고 말인가요?"

 

밀레의 이삭줍기라는 작품에서 머릿수건을 한 여인들이 보리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앞치마에 부지런히 보리이삭을 주워 담고 있습니다.

추수가 끝난 보리밭에서 남은 이삭이라도 주워 가족의 생계를 꾸리려는 여인들의 고단한 모습을 서정적으로 잘 표현한 밀레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농부들의 화가로 불렸던 밀레는 작품에는 농촌 특유의 풍경과 농부들의 순박한 삶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1849년 파리 근처의 시골 마을 바르비종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죠.

 

프랑스의 화가 밀레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부 평론가들은 밀레의 작품을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작품이라 평했습니다.

그들은 농촌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라는 밀레의 말은 들어주지 않고 가난한 노동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비난했지요.

당시 프랑스에서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개 돈 많은 자본가들이었고 그들은 이런 평을 받는 밀레의 작펭에는 당연히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밀레는 침대를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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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 램브란트

 

17세기 당시에 유럽에는 개인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대 유행 이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여럿이 돈을 모아 단체 초상화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야경이란 작품도 역시 그렇게 그렸졌습니다.

 

1642년 암스테르담 민병대 대장과 그 부하 병사들도 이런 유행에 동참하기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모아 렘브란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완성된 작품을 보고 아주 실망합니다.

기대만큼 자신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까지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술성 뛰어난 그림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얼굴이 또렷하게 나온 초상화를 바랬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렘브란트를 맹렬히 비난하게 되고 이후 그는 서서히 명성을 잃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입장에서 그 그림은 단지 돈을 주는 사람들의 마음에만 드는 그림을 그린것이 아니었죠.

진정한 예술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보호를 위해 칠한 니스때문에 색이 어두워져 밤이 배경이라는 오해를 샀지만 사실은 낮이 배경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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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만드는 에로스 - 파르미자니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에로스는 미의 여신 비너스의 아들 입니다.

에로스는 세상에 사랑을 퍼뜨리는 일을 했죠.

에로스가 쏜 화살을 맞은 사람은 누구든 처음으로 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항상 사랑만 퍼뜨렸던 것은 아닙니다.

에로스는 납으로 만든 화살도 가지고 다녔었는데 그 화살을 맞은 사람은 처음으로 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게 됩니다.

 

이 황금 화살과 납으로 만든 화살로 에로스는 장난을 치게 됩니다.

재미있는건 나중에는 에로스 자신도 화살에 찔리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프시케라는 인간 여인을 사랑해버리게 되죠.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쳐 오는 에로스의 모습니 마치 그림속 모습을 훔쳐보다가 들킨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파르미자니노의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가 다시 태어난것 같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화가였던 그는 서른 일곱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맙니다.

파르미자니노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졸라는 파르미자니노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을 파르마에서 온 작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는 오랫동안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당대의 선도적인 미술 양식인 마니에리스모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판화와 드로잉 작품들을 통해 젊은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술가 가문에서 태어난 파르미자니노는 집안의 다른 사람들보다 미술적 재능이 훨씬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십대부터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고 이 작품들은 우아하고 유려한 형상이 특징적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미술을 대표하는 특징이 되는 독특한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길쭉하고 극적인 형태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5세의 군대가 로마를 침략하자 파르미자니노는 이를 피해 볼로냐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주로 소형 종교화와 초상화, 판화를 제작했습니다.

1530년 파르마로 돌아온 그는 산타마리아 델라 스테카타 교회를 장식할 몇점의 작품들을 주문받게 되었고 이 작업을 완료하지 못해 체포되었습니다.

보석으로 풀려난 파르미자니노는 다시 수감될것을 걱정해서 카살마조레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수태고지 - 천사 같은 화가가 그린 천사

 

 

프라 안젤리코의 이 그림은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내용을 그린 것입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신성한 힘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장면을 그린거죠.

 

이 그림에서 마리아는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서는 마리아가 하얀 백합이나 매발톱꽃은 예수가 태어나 겪어야 될 고난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화가이자 성직자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프라 안젤리코는 본래의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한 신부가 그의 진실하고 경건한 보습을 보고 프라안젤리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축복받은 천사수도사라는 뜻입니다.

 

1445년에는 교황의 부탁으로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궁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을만큼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 였습니다.

또한 성품이 매우 소박하고 청렴하여 교황이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자 극구 사양하기도 했지요.

평생동안 그림으로 신에대한 경외심을 표현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는 기도의 행위로서 그림을 그렸고, 그리스도의 것을 그리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릴 때 눈물을 흘렸고, 자주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의 경건함과 깊은 신앙심은 전 작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감이 한창 깊어질 때의 그의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설교자들의 수도회로 알려진 도미니코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이 수도회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모두 사용하라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가르치는 성 도미니쿠스의 강령을 따랐습니다.

 

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 폴 세잔

 

 

세상에서 세 번째로 유명한 사과

 

 

세잔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화가 모리스 드니는

" 세상에는 세개의 유명한 사과가 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두번째는 뉴턴의 사과, 세번째는 세잔의 사과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잔 스스로도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했을 만큼 그의 정물화에서 사과는 매우 중요한 소재 였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명료함과 간결함, 밝은 색채 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바로 사과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세잔을 친구인 에밀 졸라는 비웃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문학가 중 한 사람인 에밀 졸라는 세잔과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죽마고우였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에게 힘이 되는 친구였지만 사이가 나빳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사과만 그리고 있는 세잔을 보고 에밀 졸라가 한마디 했습니다.

"세잔, 맨날 사과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자네도 밀레나 쿠르베처럼 가난한 농부들이나 서민들의 삶을 그려보지 그래."

 

하지만 세잔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지요.

에밀 졸라의 눈에는 이런 세잔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졸라가 작품이라는 소설을 썻는데 이 소설의 내용은 어느 망상에 빠진 실패한 화가의 이야기 였습니다.

누가봐도 세잔을 모델로 만든 소설이었죠.

이일로 한동안 세잔은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사이는 매우 나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폴세잔은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하여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습니다.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견고한 색채의 결합은 고전주의 회화와 당대의 발전된 미술 사이의 연결점을 제시했습니다.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 인상 : 해돋이] 클로드오스카 모네

 

 

인상주의와 인상파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작품.

 

 

인상 : 해돋이 는 모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해가 뜨는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모네는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변화를 거칠고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포착해 냈습니다.

 

인상파라는 말이 생기게 된것은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 로 인해서 입니다.

 

1874년 당시 한 무리의 젊은 화가들이 작품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를 보러온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는 모두 어이없어 했지요.

 

"웃기는 그림이야. 아루렇게나 자기 인상대로 물감을 발라 놓으면 다 그림이 되는거야?"

 

특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가장 큰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목이 인상 해돋이가 뭐야?"

 

다음 날 어느 미술 평론가가 인상:해돋이 그림을 인상파라 부르며 마음껏 비웃었습니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이때부터 이런 형식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클로드 오스카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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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속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화입니다.

최후의 만찬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리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속에 들어갈

예수와 열두명의 제자들의 모델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중에 예수의 얼굴때문에 고민은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교회 성가대에서 한 청년을 발견합니다.

피에트로 반디네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청년의 얼굴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얼굴을 표현할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청년덕분에 최후의 만찬에 예수의 그림을 그릴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와 열한명의 제자들의 그림을

완성한후에도 마지막 남은 유다를 그리지 못해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지 못한채 몇년이 흘러갑니다.

 

우연히 이 소식을 들은 로마의 시장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사형수 중에서 유다의 모델이 될만한 인물을 찾아 모델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빈치는 시장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사형수들중 유다에 어울릴만한 모델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최후의만찬에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 부탁을 받은 사형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냐고 물어봅니다.

 

어리둥절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청년이 기억이 안났습니다.

그 청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몇년전 당신이 그린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예수를 그렸죠.

 

이 사형수는 최후의 만찬 중 예수의 모델이었던

성가대의 청년 피에트로 반디네리 였던 거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에 만찬중

왼쪽 제일 앞쪽에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게 유다입니다.

 

어때요 예수의 얼굴과 비슷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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